마이클 잭슨의 이름을 들으면 자동으로 문워크가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세대가 있습니다. 저도 그 중 하나인데, 그래서 시사회 소식을 듣자마자 망설임 없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팝의 황제가 어떻게 그 자리에 올랐는지, 127분 동안 스크린 앞에 붙어 앉아 확인했습니다.
잭슨파이브의 어린 소년, 아버지라는 이름의 족쇄
영화는 마이클 잭슨이 형제들과 함께 '잭슨파이브(Jackson 5)'를 결성하던 시절부터 시작합니다. 잭슨파이브란 1960년대 후반 인디애나주 게리에서 결성된 가족 그룹으로, 모타운(Motown) 레코드를 통해 데뷔한 팝·R&B 역사의 전설적인 팀입니다. 모타운이란 1959년 베리 고디가 설립한 미국의 흑인 음악 레이블로, 흑인 아티스트들이 주류 팝 시장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통로 역할을 한 레이블입니다. 이 배경을 알고 보면 영화 속 장면들이 훨씬 입체적으로 읽힙니다.
영화가 메인 갈등으로 설정한 것은 바로 아버지 조 잭슨(콜맨 도밍고)과 마이클의 대립입니다. 조 잭슨은 아들들을 밤무대부터 훈련시키며 그야말로 가혹하게 채찍질하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제가 직접 시사회에서 이 장면들을 보면서 느낀 건, 불편함이 아니라 설명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왜 그가 네버랜드를 만들었는지, 왜 아픈 아이들에게 그토록 마음을 썼는지, 어린 시절의 공백이 하나씩 채워지는 감각이었습니다.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가스라이팅이란 상대방의 현실 인식을 조작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심리적 지배 방식을 뜻합니다. 영화 속 어린 마이클은 이 상태를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무대 위에서는 천재였지만 무대 밖에서는 아버지의 말 한마디에 굳어버리는 아이. 그 대비가 오히려 더 답답하게 느껴졌고, 어쩌면 그게 영화가 의도한 지점이기도 했을 겁니다.
솔로 독립과 전기영화가 담아낸 명곡의 탄생
솔로 앨범 [오프 더 월(Off the Wall)] 발매 이후 마이클은 아버지를 매니저 자리에서 해고합니다. 그것도 팩스로. 영화에서 이 장면이 나올 때 객석에서 작은 웃음이 터졌는데, 웃음 뒤에 남은 건 씁쓸함이었습니다. 팬으로서 그 결단이 얼마나 오래 걸렸을지 알기 때문입니다.
전기영화(Biopic)란 실존 인물의 생애를 극적으로 재구성한 장르를 뜻합니다. 이 장르의 고질적인 과제는 '서사의 압축'입니다. 한 사람의 수십 년을 두 시간 안에 담아야 하니 필연적으로 선택과 배제가 발생합니다. 영화 <마이클>은 이 압축 과정에서 명곡들을 서사의 접착제로 활용합니다. 'Ben', 'I'll Be There', 'Beat It', 'Thriller', 'Billie Jean', 'Bad'가 스크린에서 흘러나오는 순간, 시간순으로 늘어지던 이야기가 잠깐 숨을 고릅니다. 극장의 빵빵한 사운드 덕분에,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공연 실황 영상보다 더 극적인 감각이 있었습니다.
특히 뮤직비디오이자 단편 영화로 제작된 '쓰릴러(Thriller)' 에피소드는 단순한 히트곡 탄생 비화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MTV는 흑인 아티스트의 뮤직비디오를 편성하지 않는 관행이 있었습니다. 마이클 잭슨이 이 관행을 무너뜨린 과정은 일종의 미디어 권력 구조와의 싸움이었고, 영화는 그 장면을 꽤 밀도 있게 다룹니다. 이 지점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인상 깊게 본 대목입니다.
영화가 다루는 명곡들을 시기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잭슨파이브 시절: 'Ben', 'I'll Be There' — 어린 마이클의 목소리가 중심이 되는 시기
- 솔로 초기([오프 더 월] 앨범): 그룹에서 개인 아티스트로 전환하는 전환점
- [스릴러(Thriller)] 앨범 시기: 'Beat It', 'Billie Jean', 'Thriller' — MTV 장벽 붕괴와 함께 전 세계적 팝 아이콘으로 도약
- [배드(Bad)] 앨범 시기: 1988년 콘서트로 이어지는 완전한 독립 선언의 배경
이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영화가 1988년 콘서트를 엔딩으로 잡은 이유가 납득됩니다. 아버지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시점이자, 그가 더 이상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닌 온전한 마이클 잭슨이 된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홀로서기 선언, 그리고 이 영화의 한계와 가능성
평론가들의 반응은 대체로 냉담합니다. 실제로 로튼 토마토(Rotten Tomatoes)에서도 비평가 점수는 낮은 편인데, 비판의 핵심은 두 가지로 압축됩니다. 마이클 잭슨의 생애에서 가장 논란이 된 부분들이 의도적으로 배제되었다는 점, 그리고 시간순으로 흘러가는 연대기적 구성(Chronological Narrative)이 서사의 긴장감을 떨어뜨린다는 점입니다. 연대기적 구성이란 사건을 발생 순서대로 나열하는 방식으로, 인물의 성장을 보여주기에는 적합하지만 드라마틱한 반전이나 밀도 높은 갈등 묘사에는 취약한 구조입니다.
저도 이 비판에 일부 동의합니다. 공연 사이사이를 메우는 이야기들이 서사 자체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시간을 채우기 위한 것인지 경계가 흐릿하게 느껴지는 장면들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나약하게만 묘사되는 마이클의 모습이 무대 위의 압도적인 존재감과 충돌하는 부분도 있고요. 하지만 반대로 그 대비가 없었다면 이 영화는 그냥 화려한 공연 몽타주에 그쳤을 겁니다.
마이클 잭슨의 조카인 자파 잭슨이 성인 마이클을 연기했다는 사실은 꽤 흥미로운 캐스팅입니다. 유전자가 만드는 닮음이 연기의 설득력을 높이는 건지, 아니면 오히려 비교 대상이 너무 선명해서 부담이 되는 건지 보는 내내 생각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자파 잭슨은 마이클 잭슨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소화하려는' 태도가 보였고, 그 진지함이 영화에 온도를 줬습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관객의 절반 이상이 자리를 뜨지 않았습니다.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노래가 계속 흘러나왔기 때문인데, 저도 그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노래들인데 극장에서 다시 들으니 낯설게 좋았습니다. 영화의 서사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에 "그의 이야기는 계속된다"는 문구가 뜨는 걸 보면, 제작진도 이미 후속편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쪽에서 다뤄질 이야기들이 더 복잡하고 무거울 텐데, 그 무게를 어떻게 풀어낼지가 진짜 시험대가 될 것 같습니다.
5월 13일 정식 개봉 이후 국내 누적 관객이 아직 7,000명대에 머물고 있지만, 마이클 잭슨의 팬이라면 이 영화는 극장 경험이 의미 있는 작품입니다. 서사의 완성도를 따지기 전에, 저 빵빵한 사운드로 'Billie Jean' 한 소절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을 합니다.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보더라도 그 공연 장면들은 반박이 어렵습니다. 후속편이 나온다면, 그때는 더 솔직한 마이클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참고: https://cgv.co.kr/cnm/cgvChart/movieChart/30001115 https://www.rottentomatoes.com